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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 수표란 무엇인가?
경제규모가 크고 거래량이 많을 때는 지불수단으로 현금만 쓰기는 불편하다. 몇십억이 오가는 거래에서 돈을 만원짜리 현찰 다발로 묶어 들고 다닌다면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금 대신 쓸 수 있는 증권이 필요하다. 더구나 기업거래에서는 직접 현금을 주고 받지 않고 신용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거래사실을 증명해주는 역할을 하는 데도 증권은 필요하다. 그래서 상거래에서는 거래자들 사이에 서로의 신용을 바탕으로 신용화폐(화폐증권)를 유통시킨다. 곧 어음과 수표다. 어음이란 미래의 일정한 날짜를 정해 어디서, 얼마를, 누구에게 무조건 지급할 것을 약속하는 내용을 적어 상거래에 쓰는 증권이다. 어음 금액은 상한선이 없고, 돈을 건네줘야 하는 채무자가 돈을 받을 일이 있는 채권자에게 발행한다. 곧 채무자는 어음 발행인이 되고 채권자는 어음 수취인이 된다. A회사가 B회사에 1999년 9월 30일까지 1천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어음을 발행했다고 하자. 발행인인 A사는 약속한 날까지 현금 1천만원을 어음에 적힌 A사의 거래은행 곧 지급은행에 예금해둬야 한다. B사는 약속된 날에 어음을 지급은행에 가져가 어음대금을 받든다. 이렇게 어음 발행인의 거래은행을 통해 현금 지급을 약속하는 어음을 '약속어음'이라고 불러 어음의 또 다른 종목인 '환어음'과 구별한다. 환어음은 어음발행인이 어음액 지급을 은행이 아닌 제3의 지급인에게 맡기는 어음이다. 예를 들어 A사가 B사에 어음을 발행하면 B사는 B사에 어음을 제시하고 어음기재액을 받는다. 수표 역시 거래은행의 신용을 바탕으로 현금 대신 건네주는 증권이라는 점에서는 약속어음과 같다. 발행인 A가 자기가 거래하는 은행에서 받은 수표용지에 금액과 발행일자를 적어 수취인 B에게 건네주면, B는 A의 거래은행에 수표를 제시해서 현금을 받는다. 어음액은 정해진 지금일 전에는 현금으로 받지 못하지만 수표는 언제든지 은행에 제시만 하면 수표액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당좌거래, 어떻게 하나?
기업이 수표나 어음을 발행해 상거래에 쓰려면 예금, 출금은 물론 예금신용에 근거를 두고 수표나 어음을 발행할 수 있게 해주는 은행계좌를 필요로 한다. 이 은행계좌가 '당좌예금계좌'다. 기업이 당좌예금 계좌를 갖고 은행과 거래하는 것은 '당좌거래'라 한다. 수표는 보통 당좌예금에 근거를 두고 발행되므로 '당좌수표'라고도 부른다. 당좌예금은 기업이 당좌수표나 어음을 발행해 각종 거래에서 현금 대신 지급수단으로 쓸 수 있게 한다. 사업자등
록증이 있는 개인사업자와 법인이 사업자금을 운용하는 계좌로 쓰게 하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이자가 붙지 않는다. 계좌를 열 때는 거래보증금을 예치해야 하고 은행이 기업의 신용을 조사해 계좌를 열어줄지 여부를 정한다. 예금액은 제한이 없다.
당좌대출이란 무엇인가?
은행과 당좌거래를 하는 기업은 은행과 '당좌대출'을 약정하면 자기 당좌계좌에 잔액이 없더라도 일정 한도까지는 은행의 신용을 바탕으로 어음이나 수표를 발행할 수 있다. 이 경우, 은행은 거래업체 대신 해당 어음, 수표액을 지급해준다. 은행이 기업에게 대출을 해주는 셈이다. 당좌대출 계약을 하고 어음, 수표를 발행하는 기업은 그 대신 당좌대출 금리에 따른 어음, 수표의 이자를 내야 한다. 당좌대출 금리는 금융기관마다 시중 실세금리를 이루는
주요 금융상품의 금리(콜, 양도성 예금증서, 환매채 수익률 등)를 고래해서 정한다.
어음결제, 이렇게 한다.
약속어음이나 당좌수표는, 발행자가 당좌예금계좌를 갖고 있는 은행을 지급인으로 삼는다. 어음 만기일이 되면 어음 수취인은 어음을 건네준 발행인의 당좌계좌가 있는 은행에 어음을 제시하고 어음대금 지금을 요구하게 돼 있다. '지급제시'라고 부르는 이 절차는 보통 어음만기일 하루 전날, 어음수취인의 거래은행이 대행한다. 어음이 '지급제시'되면 어음액을 지급하도록 지정되어 있는 은행은, 어음 만기일 영업이 시작되는 시간 전까지 해당 어음을 발행한 기업의 당좌계좌에 어음을 결제할 만큼의 현금이 있는지 확인한다. 어음액을 내줄 수 있을 만큼 잔고가 충분하면 해당금액은 어음대금을 지급제시자(어음수취인의 거래은행)에게 내주면 된다. 이것으로 어음은 '결제'된다.
'부도', 이렇게 난다.
어음수취인을 대행하는 은행이 어음을 '지급제사'하면, 어음대금을 치러야 할 지급은행은 우선 어음발행인의 당좌계좌를 확인해본다. 그 결과 만약 어음대금을 내줄 만큼 잔액이 충분치 않을 때는 해당 기업에 이 사실을 알려 입금하도록 한다. 입금요청을 받으면 해당 어음을 발행한 기업은 당일 은행 영업이 끝나는 시각까지는 해당 어음을 결제한 금액을 거래은행 당좌계좌에 입금해야 한다. 어음 발행인이 돈을 마련하지 못해 제때 입금을 못하면, 이른
바 '어음을 막지 못하는' 것이다. 지급은행은 어음을 1차 '부도' 처리한다. '부도'란 결국 수표나 어음의 수취인이 돈을 받을 기일이 돼도 지급인에게 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기업이 부도를 낸다는 것은 어음을 막지 못한다는 뜻이다. 1차부도가 나고 다음날 은행 영업 마감시각까지도 어음을 막지 못하면 어음은 최종부도 처리된다. 지급은행은 최종부도 사실을 어음교환소에 보고한다. 전에는 어음교환소가 해당 어음의 최종부도 사실을 각
은행에 통보하면, 그 다음날부터 해당 기업의 당좌거래가 모든 은행에서 전면 정지됐다. 그러나 98년부터는 은행별로 판단해 당좌거래 정지 여부를 정한다. 부도가 나서 당좌거래가 정지되면 기업은 어음이나 수표를 발행할 수도 없고 금융기관 대출도 못받게 된다. 그러므로 특별한 수가 생기지 않는 한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다.
연쇄부도, 이렇게 찾아온다.
부도 난 어음은 한갓 종이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이 부도를 내면 그기업과 어음을 주고 받으며 거래하던 기업들이 연달아 부도를 내게 된다. A사가 B사에게 어음을 발행하고 B사가 C사에게, 다시C사는 D사에게 어음을 발행했다 하자. A사가 부도를 내어 B사에게 줄 돈을 주지 못하면, B사도 타격을 입어 C사에게 건네준 어음을 결제하지 못한다. 그러면 C사 역시 타격을 입어 D사에게 발행한 어음을 결제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기업의 연쇄부도 사태가 터진다. 97년에 기아그룹이 부도를 냈을 때는 기아그룹의 협력회사 1만 5천개가 연쇄부도의 위기에 몰렸다. 어음제도는 건전한 흑자기업에 치명타를 입히곤 한다. 제 아무리 규모가 크고 흑자를 내는 기업일지라도 일시적으로 자금난에 몰리면 어음을 결재하지 못해 부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부도가 나면 뒤늦게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기업 신용이 크게 떨어져 은행에서 자금을 빌거나 다른 거래에서 매우 불리해진다. 어음이 편리한 결제
수단이기는 하나 흑자기업의 부도와 연쇄부도 가능성 등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97년 이래 연쇄부도사태가 발생하면서 어음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다. 97년 9월부터는 어음거래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음보험제도가 시행했다. 물품대금으로 받은 상거래 어음을 보험을 들어놓으면 해당 어음을 발행한 업체가 부도를 냈을 때 일정액의 보험
금을 탈 수 있다. 97년 9월 현재로는 최고 5억원짜리의 어음을 보험에 들 수 있다. 보험에
든 어음이 부도가 나서 받지 못하게 되면 보험금액의 60%(최고 3억원까지)를 보험취급기관
인 신용보증기금이 지급한다. 어음금액중 보험취급 기관이 보험금을 지불하는 한도비율을
'부보율'이라고 하는데, 최고한도 부보율은 60%인 셈. 보험금을 노린 사기가 있을 때 있어
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기업을, 중소기업으로서 전년도 매출액이 10억원 이상이고 3년
이상 영업을 계속한 경우에만 한정했다.
경기침체 때는 어음부도율이 높아진다.
회사가 발행한 어음이 거래은행(지급은행)으로 돌아와 '지급제시' 되고 지급은행이 어음결제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 어음이 '교환에 회부됐다.'고 말한다. 어음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교환에 돌려진 어음액 가운데 결제를 하지 못해 부도가 나는 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어음부도율'이다. 1천만원의 어음이 '돌려져' 1만원이 부도가 나면 어음부도율이 1%다. 보통때 서울 지역 어음부도율은 0.1% 안팎인데, 기아그룹 어음이 부도 처리된
97년 10월에는 0.4%선을 넘었다. 어음부도율은 시중 실세 금리와 함께 시중 자금사정이나 경기상황 등을 판단하는 지표로 쓰인다. 경기가 침제할 때는 높아지지만 경기가 좋을 때는 시중 자금사정이 좋아져 낮아진다.
부도난 기업을 살리는 길
부도는 반드시 기업의 파산(도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파산은 기업이 완전히 쓰러지는 것인데, 어음 부도를 냈다 해서 기업이 모두 다 쓰러져 사라지지는 않는다. 부도난 기업이 갈 길은 해당 기업으로부터 받을 돈이 있는 채권자들이 돈을 돌려받기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에 달렸다. 채권자들이 회사를 정리해 얼마가 됐든 빚을 돌려받기로 정한다면, 기업은 법원에 파산 신청을 낸다. 그런 다음 파산선고를 받은 회사는 남은 재산을 털어 되는 대로
빚을 갚고 사라진다. 회사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돈을 돌려받고자 하는 채권자의 처지에서 보면 회사가 파산하도록 두는 게 반드시 최선이 아니다. 회사가 사라지고 나면 그나마 채권을 돌려받을 가능성조차 사라지기 때문이다. 기업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나마 남은 재산이라도 챙기자고 한다면 파산 절차를 밟으면 된다. 하지만 그래봐야 몇 푼 건지지 못할 상황이고 또 소생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기업을 소생시키는 게 빚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더 높을 수도 있다. 이런 판단에서 채권자 등이 부도난 기업을 살리는 방안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법정관리, 은행관리, 화의, 부도방지협약 같은 것들이다.
법정관리 -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길
법정관리란 주식회사에만 해당되는 회사 재건 통로다. 채권자나 주주 혹은 회사가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법원은 결정이 날 때까지 '재산보전 처분'을 내린다. 채권자들을 위해 회사가 남은 재산으로 마음대로 빚을 갚거나 처분하지 못하게 하고, 허가 없이 돈을 꾸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재산보전처분이 내려지면 해당회사가 발행한 상업어음도 결제가 중단된다. 그러면 해당 회사에 납품한 대금으로 어음을 받은 협력회사들은 연쇄도산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법원이 해당 회사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법정관리가 시작된다. 법원은 기존 경영자를 물러나게 하고 법정관리인(재산보전관리인)을 임명해 일정기간 회사의 경영과 재산 관리, 처분을 맡게 함으로써 회사를 소생시킨다. 법정관리가 개시되면 기업이 진 빚은 법정관리인이 따로 정할 때까지 갚지 않아도 된다. 법정관리 기간은 평균 10년, 길게는 20년까지 가능하다. 법정관리인은 회사를 다시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수도 있지만 제3자에게 팔아 넘길 수도 있다. 법원은, 회사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때는 법정관리 신청을 기각한다. 법정관리 신청이 기각된 회사는 정리절차를 밟는다. 남은 재산을 털어서 되는 대로 빚을 갚고 사라지는 것이다. 기각 가능성이 있으므로, '법정관리'란 주식회사를 정리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경영권을 유지할 수 이는 '화의'
'화의'는 법원의 중재감독 아래 채권자와 기업이 합의해서 일정기간 채권 회사를 미루고 기업이 영업을 지속하게 하는 제도다. 채권은 기업이 소생한 뒤 돌려받는다는 취지다. 기업이 직접 언제까지 어떻게 빚을 갚겠다는 계획을 세워 법원에 화의 신청을 한다. 화의 신청을 받은 법원은, 우선 재산보전 처분을 내려 해당기업의 채권가 채무를 움직이지 않게 묶어놓는다. 그런 다음 채권자들의 동의를 전제로 해당 기업이 소생할 수 있는가 여부를
판단해 화의 허락 여부를 정한다. 화의가 결정되고 채권자들이 동의하면, 기업은 길게는 7년 동안 채권자의 빚 독촉에 시달리지 않고 영업을 계속할 수 있다. 법원이 화의 신청을 기각하거나, 법원이 화의를 인가하더라도 채권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화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회사는 법정관리로 넘어가거나 곧 바로 파산절차를 밟게 된다. 화의가 이루어지면 채권자들이 경영자의 경영능력을 신뢰해야 한다. 화의가 성립되면 기존 경영자
에게 그대로 경영을 맡겨 기업 재생을 도모하게 되기 때문이다. 경영권이 유지된다는 점에서는 기존 경영자로서는 화의를 법정관리보다 선호하는 게 당연하다. 채권자들로서도 법정관리보다 화의를 선호할 수 있다. 화의가 법정관리를 받는 경우보다 채권을 돌려받는 데 시간이 짧게 걸리기 때문이다. 화의때는 담보를 갖고 있는 채권자라면 담보를 처분할 수 있다는 것도 채권자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그렇다 해도 법원이 경영자의 화의신청을 반드시
받아들인다는 법은 없으므로 화의와 법정관리 어느 쪽이 기업을 소생시키는 데 더 나은 길인가는 개별 사례마다 달라진다. 1997년에 부도 위기에 몰린 기아그룹은 채권단의 동의를 얻지 못해 법원에 신청한 화의를 허락받지 못했다. 제일은행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은 기아그룹이 부도 위기에 몰리자 그룹 최고경영자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아그룹은 경영자를 필두로 경영권 고수를 고집하며 법원에 화의를 신청했다. 기아그룹이 화의를 고집한 데
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아는 채권단의 동의를얻지 못해 화의결정을 얻어내는 데 실패했고 결국 법정관리로 넘겨졌다. 화의와 마찬가지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회사 재건방안으로는 '은행관리'라는 것도 있다. 부도난 기업의 주요 채권자인 주거래은행이 자금관리단을 해당 기업에 파견해 기존 경영진의 기업 경영과 자금관리에 참가케 함으로써 회사를 소생시키는 제도다. 기업과 은행의 계약으로 이루어지고, 주거래은행은 기업이 부도가 나도 일정기간 자금지원을 계속한다. 은행관리로도 소생하지 않는 기업은 법정관리를 거쳐 파산절차를 밟는다.
부도방지협약이 부도를 재촉한다?
'부도장비협약'은 한보, 삼미 그룹의 부도 뒤에 대기업의 연쇄도산을 막자는 취지로 97년 4월에 만들어진 제도다. 은행에 갚지 않은 채무액이 2천 5백억원 이상 되는 대기업이 부도를 내고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때 채권단이 적극 지원해 일정 기간 안에 회사를 소생시키는 제도다. 일정 기간동안 최종부도 처리를 미뤄준다는 점에서 '부도유예협약' 이라고도 부른다. 97년 부도 위기에 몰린 기아그룹은 우선 부도방지협약을 적용받고 소생을 도모했지만 잘 되
지 않아 화의를 신청하고 그것도 되지 않아 법정관리로 넘어갔다. 97년 말에는 '부도방지협약'과 비슷한 취지의 '협조융자협약'제도가 만들어졌다. 역시 기업이 부도를 내기 전에 금융기관이 협조해서 융자를 해줌으로써 기업이 부도 위를 넘길 수 있게 지원하자는 제도이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부도방지협약이든 협조융자협약이든 부도가 날 위기에 몰린 기업이 적용대상이다. 금융기관들은 '협약'들을 적용받는 기업을 일시적인 자금난에서 건져줌으로써 자금을 빌려주는 대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협약'이 적용되는 기업이야말로 부실 정도가 너무 엄청나서 더 융자해줘봤자 돌려받지 못하게 되리라고 보고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부도방지협약이나 협조융자협약이 오히려 부도를 재촉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되살아나는 기업들
은행관리, 부도방지협약, 화의, 법정관리 등은 일단 최종부도를 낸 기업이라도 당좌거래를 계속하며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이들 제도를 잘 활용하면 기업이 회생할 가능성은 있다. 1982년에 부도를 내고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삼선중공업은 85년부터 법정관리를 받았다. 1999년 10월말까지 15년간 회사의 채무 전액 164억원을 갚는다는 게 법원의 인가 조건이었다. 13년 동안 법정관리를 받으며 영업을 계속한 삼선공업은 소생에 성공했고 예정을 앞당겨 97년 9월 법정관리를 벗어났다. '대기업 부도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 금융기관이 기업체 빌려준 금액에서 따져 재계 순위 6위던 기아그룹이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1997년 국내외 금융시장에는 큰 충격이 가해졌다. 우리 나라에서 대기업의 부도가 금융시장에 어떤 파급효과를 갖는지 외환시장, 자금시장, 주식시장, 해외금융시장별로 나눠서 알아보자. (외환시장) 기아그룹이 쓰러지자 기아에 거액을 빌려준 융기관들은 속절없이 돈을 떼이게 됐다. 빌려준 돈은 돌려받지 못하고 고객 예금은 돌려줘야 할처지가 된 금융기관은 재무상태가 실속을 잃게 된다. 그렇지 않았도 잇달은 부도 사태로 기업에 대출해준 돈을 떼이고 있던 금융기관들의 부실화에 기아 부도사태는 더욱 속력을 붙였다. 잇단 부도로 부실해진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대외적으로 신용을 잃어 외국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오기가 어려워진다. 외국 금융기관은 국내 기업, 금융기관의 재무상태를 재평가하고, 돈을 빌려주더라도 전보다 높은 이자를 요구하거나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게 됐다. 융자 자체를 줄이기도 했다. 해외에서 들여올 수 있던 돈이 갑자기 줄어들자 외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달리면서 원화환율은 급등세를 더하게 됐다. (자금시장) 기업 부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아 같은 대기업이 위기에 몰리자 금융기관들은 대기업이라도 믿을 수 없게 됐다. 신용불안이 커진 것이다. 은행등 금융기관은 기업에 대출해주기를 꺼리게 됐다. 기아 그룹이 어음액을 입금한다는 보장이 없어졌으므로 금융기관들은 기아가 발행한 어음의 할인을 중지했다. 중소기업들이 기아에서 받은 어음들이 돈이 되지 못하는 사태가 생긴 것이다. 그 결과 기아에 제품을 납품하며 거래하는 많은 협력업체들은 자신이 발행한 어음을 막을 돈도 없어 연달아 쓰러질 지경이 됐다. 은행에서 돈을 구하지 못하면 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해보려 하게 된다. 그러나 회사의 신용이 불확실해진 마당에 회사채
라고 팔릴 리 없다. 회사채 수요는 적은데 공급은 많아지면서 자금시장에서는 금리가 치솟게 됐다. (주식시장)기아가 쓰러질 지경이 되고 국내기업, 금융기관들이 외화를 얻어오기 어렵게 되자 환율이 치솟게 됐다. 환율이 치솟으면 한국 기업 주식을 사 갖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드은 앉은자리에서 손실을 보게 된다. 외국인들은 앞으로도 계속 원화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환차손을 피해 주식 처분에 나섰다. 부도 위기에 몰리는 기업이 이어지
면 주가가 떨어지는 것도 외국인들의 판단을 '팔자'로 기울게 했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주식을 팔아치우는 것을 보면서 다른 기관투자가나 개인투자자들도 투자심리가 위축되어 주식 매매를 전보다 줄이게 됐다. 그 결과 주식시장에서는 거래량이 줄어들어 주가 회복 가능성을 더욱 내리 눌렀다. 침체된 주식시장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금리는 올라가는 상황에서는 투자자들이 여유자금을 안전성이 비교적 높은 은행으로 옮기게 된다. 투자가들
이 떠나면서 주가는 폭락하게 됐다. (해외금융시장) 기아 같은 대기업이 부도 위기에 몰리면 한국경제는 외국의 금융기관, 투자자들로부터 신용을 잃게 된다. 외국 금융기관들이 한국의 기업, 금융 기관은 물론 정부에게 서조차도 빌려준 돈을 이자와 함께 제때 돌려받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국가신용도가 하락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 기업이나 정부가 외국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에서 발행하는 채권도 사겠다는 이가 없어 값이 폭락하게 된다.
왜 '구조조정'이 필요한가?
'구조조정'이란 기업과 산업, 경제의 구조가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바뀌는 일을 말한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 업종이 도태되는 대신 경쟁력이 높은 기업, 업종이 발전하면서 한 나라의 산업, 경제가 고비용, 저효율 구조로부터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고도화하는 것이다. 왜 구조조정이 필요한가? 세계를 무대로 벌어지는 기업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기업은 시장이 개방화, 자유화라는 이름 아래 세계를 만들더라도 방심하고 있으면 이내 외국에서 들어오는 더 좋고 더 싼 볼펜에 시장을 빼앗길 지경이
됐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앞장서서 국제적으로 공정한 경쟁여건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세계무역을 지배하게 된 것도 경쟁을 부추긴다. 국제무역질서가 바뀌어 이젠 과거처럼 수출을 하는 기업이라 해도 정부 보증으로 싼 이자에 돈을 빌 수도 없고, 외국 경쟁사의 수출공세를 정부에 의지해 막을 수도 없게 됐다. 더 좋은 상품, 더 좋은 서비스를 더 싼 가격에 수출하지 못하면 국제경쟁을 이길 수 없게 되고, 경쟁에서 도태되는 기업이 늘어나면 나라의 수출이 줄
어든다. 수출을 모사면서 수입 상품으로 살다보면 외채가 늘어나 나라 경제가 파탄에 직면하게 되어 있다. 우리 나라는 경제성장을 수출에 크게 의지하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그러므로 은행이든 기업이든 경쟁력이 낮은 기업을 그대로 둔다면 나라의 경쟁력이 떨어져 나중에는 국민 모두가 낭패를 보게 된다. 그런 사태가 오기 전에 기업과 산업 전체가 구조를 바꿔 경쟁력을 높여야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급변하는 세계에 적응해 생존할 수 있다. 말하자면 구조조정이란 '해야 하는 것'이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서둘러 할수록 좋고, 시장에 경쟁이 존재하는 한 계속돼야 한다. '무한경쟁시대'가 열렸다. 구조조정은 어떻게 하나? 개별 기업들은 시장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일을 처리하는 방법과 과정을 다시 설계하고 , 조직을 재구성하며, 불필요한 조식과 비용은 줄이는 일을 통해 할 수 있다. 사내에서 엉성하게 하던 일을 외부 전문인력에 맡겨 비용은 줄이고 성과는 높이는 것도 도모할 수 있다. 개별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산업별 구조조정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된다. 전체 산업, 경제의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정부가 법제, 행정의 효율성을 높여 여건을 조성하는 일도 필요하다. 누리 나라 경제는 1997년 대기업 부도와 금융기관 부실화가 이어지면서 외환위기가 몰렸다. 급한 불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끌수 있었지만 우리 나라는 IMF가 경제정책을 관리하는 체제 아래 놓여 시장을 열고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어찌다 이렇게 됐을까? 90년대 들어 개방화, 자유화가 진전되면서 세계적으로 기업경쟁이 격심해지는 와중에도 우리 나라 기업은 80년대 후반까지 쌓아올린 성가에 안주해 더 이상 낮은 경쟁력과 고비용, 저효율의 경영구조를 개선하지 않았다. 기업들은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기술개발과 품질, 생산성의 향상에 노력하기보다는 부동산 투기 등 거품을 불리는 자산투자에 골몰했다. 부동
산 투기 등에 필요한 돈은 은행에서 빌었고, 차입금에 의존한 경영으로 자기자본의 몇 배나 넘는 빚을 안아 재무구조는 취약했다. 국제무대에서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만 했다. 수출이 부진해지면서 기업 실적은 저조해졌고 나라 전체로는 경상수지 적자가 쌓여갔다. 경장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빌어오는 외채도 불어나 악순환이 계속됐다. 90년대가 깊어지면서 우리 기업들이 겪는 불황은 함께 깊어졌다. 저조한 수출과 부진한 영업으로 기업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기업이든 가계든 적자가 이어지면서 손실이 불어나면 자구만 빚을 지게된다. 그러나 빚을 갚을 길이 보이지 않는 한, 빚을 적자를 메우는 것은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치게 돼 있다. 빚 위에 또 빚을 내서 밑 빠진 독에 물을 쏟아 붓듯 희망 없는 사업에 거액을 탕진하는 절망적인 기업이라면, 정부도 더 이상 뒤를 보증해주지 않는다면, 은행이라 해도 언제까지 돈을 대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는 은행마저 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들이 손을 들었고, 급한 자금을 수혈받지 못한 부실기업등은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보그룹이 첫 타자였다. 한보에 이어 삼미 진로 등 내로라는 대기업들이 줄을 지어 쓰러지면서 막대한 자금을 대기업들에 빌려줬던 금융기관들은 단숨에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다. 금융기관들은 부랴부랴 기업에 빌려준 돈을 걷어들이고 신규자금대출을 중지하는 데 나섰다. 산업계에는 돈이 돌지 못하게 됐고 금리가 치솟으면서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은 규모를 가리지 않고 쓰러졌다. 금융기관이 파산지경에 놓인 기업과 함께 비틀거리는 동안 국내 기업과 은행의 대외신용도는 크게 떨어졌고. 기업은 물론 은행마저 외국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어오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금융기관이든 기업이든 어디서고 돈을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심해졌고 한국은행이 돈을 풀어 금융을 통제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금융이 마비되는 금융위기가 찾아왔고, 기업의 연쇄파산이 예견됐다. 금융위기가 예견되자 외국인 투자가들은 주식 등 우리 나라에 투자한 자산을 내고 팔고 원화를 달러로 바꿔 철수하기 시작했다. 주가는 폭락했고 삽시간에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원화가치가 폭락, 환율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내국기업이건 외국기업이건 가릴 것 없이 달러를 챙겨두느라 시중에는 달러가 말라붙고 환율은 그럴수록 한껏 치솟았다. 단기외채 상환기일이 임박했는데 한국은행에는 달러가 부족했다. 외채를 갚지 못해 정부가 모라토리움(대외채무 지불유예)을 선언하게 되면 나라 경제는 파탄을 맞게 된다. 온 나라가 외환위기의 벼랑 끝까지 갔다. 진작에 빚더미에 올라앉은 부실기업이나 금융기업을 정리하고 우량기업위주로 기업과 금융질서를 다시 짜서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데 노력했다면 위기를 예방할 수도 있었고, 또 위기가 와도 자력으로 넘길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당면한 위기를 넘기려면 국제통화기금에 금융지원을 신청하는 길밖에 없었다. IMF프로그램 아래서 뒤늦게나마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저비용, 고효율의 사업구조로 다시 태어나고 재무구조를 개선해 대외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도파 M&A, 승자 없는 싸움
'M&A'란 기업의 합병과 인수를 줄인 말이다. 한 마디로 '기업결합'이라고도 부른다. 합병이란 둘 이상의 기업이 합쳐서 한 개의 기업이 되는 것이다. 주로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흡수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때로는 여러 기업들이 헤져 모여 새 기업을 만들기도 한다. 인수란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자신이나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획득하는 것이다. M&A는 당사자간에 합의해 할 수도 있고 강자가 약자를 정복하는 식으로 할 수도 있다. 합병이나 인수를 마음먹은 기업이 상대 기업의 경영자의 대주주로부터 동의를 업어 하는 인수, 합병을 '우호적M&A', 상대 기업의 동의 없이 강행하는 M&A를 '적대적 M&A'라고 부른다. 주식을 인수해 M&A를 할 경우, 우호적 M&A라면 상대기업의 경영진, 대주주의 합의해 주식을 사면 된다. 적대적 M&A를 할 때는 방법을 달리한다. 매수대상 회사측과 협의하지 않고 증권시장에서 직접 주식을 사 모으거나, 증권회사 창구에서 주식을 공개 매수하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1994년 한솔제지가 동해투금 주식을 공개 매수해 경영권을 인수한 게 적대적 M&A의 효시였다. 97년 봄에는 신동방그룹이 대농그룹이 계열사인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M&A에 나서면서 두 기업 사이에 M&A 전투가 벌어졌다. 신동방그룹은 미도파 주식을 사 모으는 데 1천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경영권 방어에 나선 대농그룹은 여기저기서 무리하게 돈을 빌어 1천 3백억원을 쏟아붓다가 금융비용 등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자금난에 빠져 그룹에 해체되고 말았다. 공격자였던 신동방그룹 역시 좋은 결과를 보지 못했다. 대농그룹이 쓰러지면서 미도파의 주가가폭락하는 바람에 신동방그룹은 미도파의 주식을 사 모았던 동방페레그린증권사를 팔아치워야 했다. 동방페레그린증권사는 신동방그룹의 주력기업이었다. 미도파를 둘러싼 M&A 전쟁은 공격자와 방어자 모두가 마가뜨린 셈이다. 우리 나라는 97년말국제통화기금의 자금을 지원받는 조건의 하나로 외국 투자가들의 한국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를 허용하게 됐다. 외국인들이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을 상대로 '사냥'에 나설 수 있게 되면서 M&A는 우리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구조조정의 견인차, M&A
적대적 M&A가 남의 기업을 빼앗는 것이라고 본다면 M&A를 당하는 기업에게는 불리한 일만 생긴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은 그렇지 않다. M&A 대상으로 지목되는 기업은 대개 약점을 안고 있기 마련인데,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쪽은 자금여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자금여유가 있는 기업에 M&A 되는 것이므로, 그런 기업은 장차 경영을 쇄신해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식시장에서 우세해진다. 그래서 M&A대상으로 지목되는 기업은, 일단 소문이 나면 주가가 폭등한다. 기업의 대주주 가운데서도 회사가 적대적 M&A 공격을 받을 때 경영권을 고수하려 하기보다는 주가가 오르는 틈을 타 갖고 있는 주식을 팔아치워 '남는 장사'를 하는 이들도 있다. 산업 전체 차원에서 보면, M&A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부실기업이 신속하게 정리되고 자원이 효율적으로 재배치되는 효과도 얻는다. 말하자면 M&A가 진행되면서 산업구조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M&A가 산업의 구조조정을 이끄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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