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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도상국의 은행 - 세계은행
IMF와 마찬가지로 유엔 산하의 다른 대표적 국제금융기구가 세계은행이다. 정식 이름은 국제부흥개발은행 세계은행은 아시아개발은행 등 몇 개의 다른 기구들과 더불어 '세계은행 그룹'을 이루고 있다. 주로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낮은 금리로 이루고 있다. 주로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낮은 금리로 장기에 걸쳐 빌려준다. 기술도 지원하고 관련 연구나 연수사업도 벌인다. 세계은행 회원국이 되려면 국제
통화기금(IMF)에 가입해야 한다. 두 기구가 국제통화와 밀접히 관련돼 있어 매년 함께 연차총회가 열린다. IMF와 세계은행은 모두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세계부흥을 목적으로 내걸고 미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국제금융기구다. 미국 브레튼 우즈에서 설립협정을 맺었다. 해서 '브레튼우즈 기구'라고도 부른다. 또 오늘날 국제금융질서가 이들 기구를 중심으로 짜였다. 해서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부른다. IMF와 세계은행은 가장 큰 국제금융
기구로서 정책결정 등을 통해 가맹국의 경제정책과 국제금융시장에 직접 큰 영향을 미치며 세계경제의 주요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97년말 우리 나라가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IMF는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그리고 미국 일본 등과 더불어 600억달러가 넘는 긴급자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국제무역의 재판관 WTO
IMF, 세계은해이 세계의 금융질서를 통활하는 기구라면, 세계의 무역질서를 통활하는 국제기구는 세계무역기구 곧 WTO다. WTO는 IMF, 세계은행과 함께 세계경제체제의 양대축을 이룬다.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질서의 확립'을 목표로 1995년 1월 1일 출범했다. 1995년 이전, 각국은 1947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맺고 이 협정을 통해 수입되는 상품, 서비스로부터 걷는 관세를 포함해 무역에 관한 이견을 조정하며 국가간 자유 무역의 확대를 꾀했다. GATT는 각국이 관세를 낮출 뿐 아니라 관세 외의 방법으로 상품, 서비스의 수입 수출을 막는 비관세장벽을 없애도록 권하며 무역 확대를 꽤했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특정한 나라로부터 특정 상품, 서비스의 수입을 막는다든가 무역 상대를 차별하는 등 자유무역을 거스르는 일은 GATT가 해결하고자 하는 주요 과제였다. 그러나 이런 과제를 효과적으로 다뤄 내기에는 GATT는 역부족이었다. GATT가 나라들 사이의 협정에 불과했고 협정을 어기더라도 구속력이 없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나라 사이의 협정 수준을 넘어서, 구속력을 갖고 세계무역에서 발생하는 이견을 조정하고 분쟁을 가려주는 국제연합(UN)과도 같은 역할을 할 강력한 국제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WTO가 출범했다. 1997년 현재 132개국이 가맹한 WTO는 종전의 GATT체제로 '자유로운 무역'을 추구하는 데 그쳤으나, GATT에서 문제삼지 않았던 서비스나 지적재산권 분야를 포함해 더 넓은 분야에 걸쳐 무역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가 여부를 문제삼는다. 또 무역거래에서 자국의 농산물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값싼 외국농산물 수입을 막는 정부의 조치는 자국무역을 보호하는 보호무역주의적 행동이자 불공정한 무역행위로 본다. 정부가 값싼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도록 허용해, 그 동안 국내에서 비싸게 팔리던 국산 농산물이 상대적으로 덜 팔린다고 하자. 생산자들은 당연히 정부를 비난할 것이다. 정부가 생산자의 불만을 달래려고 정부 재정에서 보조금을 지급해 생산자의 부족한 수입을 보충해준다면 WTO는 불공정한 무역행위라고 본다. 요컨데 국제적으로 어느 나라든 상대에게 서로의 시장을 열고 서로의 상품을 자유로이 유통시키며 경쟁할 수 있게 하는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거래 질서를 세운다는 데 WTO가 보는 '시장개방'과 '공정한 무역'의 뜻이 있다. 이런 뜻에서 WTO는 '시장개방'과 '공정한 무역'의 확대를 큰 목표로 내걸고 회원국에 정책을 권고하고 무역분쟁을 중재한다. 분쟁중재를 위해 WTO는 면책특권을 갖는 직원과 각국대표들로 이루지는 사무국, 일반이사회 밑에 분쟁해결기구와 무역정책검토기구를 두고 있다.
슈퍼 301조를 한국이 WTO에 제소하는 뜻은?
1997년 미국은 우리 나라와의 자동차협상이 뜻대로 안되자 우리 나라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통보했다. 우리 나라와 미국 사이에 무역분쟁이 생긴 셈이다. 우리 나라는 미국에 맞서 WTO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강력한 미국을 상대로 우리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을까? 미국이 우리 나라에 대해 무역보복을 통보하는 근거는 슈퍼 301조라는 미국 종합무역법이다. 한갓 미국의 국내법이다. 이 법을 따라 미국인들은 외국의 무역관행 가운데 미국을 상대로 불공정한 무역제도나 정책을 운영한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있으면 우선협상대상국 관행(PFCP)으로 지정한다. 그런 다음 협상을 벌이면서 특정 상품이나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역보복을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이 '자기네끼리 정한' 법임에도 불구하고 슈퍼 301조는 국제 무역 무대에서 마치 국제법과도 같은 힘을 갖는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수출, 수입 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5년에 미국과 일본이 자동차협상을 벌였을 때도 그랬다. 일본이 미국에 자동자를 많이 수출해서 미국의 자동차회사와 미국에 적자를 크게 안겨주자 미국은 95년 일본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본이 불공정한 무역제도를 운영해. 미제 차는 이론시장에서 팔지 못하게 하면서 미국에만 차를 팔아댄다'는 게 정부를 업은 미 자동차회사들의 주장이었다. 일본은 미국에 반발했고 협상은 일단 결렬됐다. 그러자 미국은 슈퍼301조를 발동, 일본의 무역관행을 자동차분야에 우선협상대상국 관행(PFCP)으로 지정했고 일본에서 미국시장으로 들어오는 자동차에 100%의 보복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일본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WTO체제 이전에는, 나라 사이에 무역협상이 결렬되면 상대국에서 수입하는 상품에 관세를 높게 매기거나 상대국 상품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로 서로 보복을 했다. 이 경우 피해를 더 크게 보는 쪽은 약소국이므로 힘 없는 나라들은 힘의 논리에 굴복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WTO는 무역분쟁이 났을 때 강대국의 뜻이 일방적으로 관철될 수 있게 두지 않는다. WTO는 무역분쟁과 관련, 회원국의 일방적인 조치가 있을 경우 패널을 설치, 다자간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 패널을 운영하는 GATT에서는 패널 협상결과에 승복하지 않아도 제재할 수 없다. 그러나 WTO는 협상대상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보복을 가할 수 있으므로 강한 구속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는 1997년 말 현재까지 미국의 슈포 301조를 '자의적으로 적용되는 미국 국내법이며 국제규범에 어긋난다'며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한 나라는 없었다. 일본도 제소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결국은 그만 두고 말았다. 그만큼 미국은 세계무역기구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우리로서는 WTO가 국제무역의 UN역할을 한다는 점에 기대해볼 만하다고 보고 미국을 제소하겠다고 나섰지만 실은 으름장에 불과한 것을 수 도 있었다. 미국도 어디까지나 우리 나라 자동차 시장에서 미제 자동차 판매 몫을 넓히겠다는 게 협상목적인 만큼 무역보복을 능사로 삼지는 않
는다. 그나마 이 문제는 우리 나라 경제가 IMF의 관리 아래 놓이면서 뒷전으로 돌려졌다.
미국과 일본의 무역마찰, 왜 다투나?
일본에서는 외국 화물선이 도착해 짐을 내리려면 항만하역노동자 조합과 사전에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이런 관행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당연히, 일본의 무역항을 드나드는 미국 등 외국의 화물선 그리고 무역 관련업자들에게는 원활한 수출입거래를 막는 걸림돌이었다. 미국은 1997년 일본 정부에 사전협의 관행을 폐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일본 정부는 부두 노동자들의 오래된 관행을 정부가 나서서 고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미국은 보복조치로 미국 항구를 드나드는 일본 화물선에 1척당 10만달러씩 과징금을 부과했다. 일본 배들이 과징금 내기를 미루자 미국은 일본 선박의 미국항 입항을 금지하고 입항하는 배를 붙잡아놓겠다고 발표했다. 놀란 일본이 제도 개선을 약속해 가까스로 큰 충돌은 피했다. 경상수지 흑자가 주로 무역흑자에 힘입은 것을 때는 국가간에 무역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 좋은 예가 일본과 미국의 해묵은 무역마찰이다. 두 나라 사이의 마찰은 일제 자동차 컴퓨터 필름의 대미수출, 미국산 사과의 일본 수출, 미국 항공사의 일본 국내 취항문제 등을 둘러싸고 줄을 이어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미, 일 마찰의 근본 이유는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크게 내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해 만년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미국은 일본이 불공정한 거래로 미국의 국부를 빼앗아가고 있다며 불평한다. 일본 정부는 겉으로는 '외국기업이 일본기업과 동등하게 경쟁하며 영업할 수 있도록 자국시장을 개방한다' 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행정규제 등을 동원해 외국상품의 차별대우를 조장 혹은 방관해서 미제를 포함한 외제 상품의 대일수출을 막는다는 것이다. 미국기업의 주장은 이렇다. '시장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미국시장에서는 어느 나라 기업이든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 이 조건을 악용해 일본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 판매기반을 넓히려고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상품판매 공세를 펴는 덤핑을 일삼는다. 일본기업들은 결국 미국의 시장질서를 더 개방하도록 요구하고 덤핑 규제는 물론 필요하면 무역보복도 해야 한다.' 그러면 일본은,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어디까지나 미제상품이 일제에 비해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제에 비해 품질좋고 값도 싼 일제 상품을 미국소비자들이 좋아해서 많이 사기때문에 일본의 대미 수출이 잘 되고, 그 결과가 일본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일본 기업들에게 무역보복을 하겠다며 협박하고 자국의 국민감정을 부추겨 경제문제를 경제외적 논리로 풀려 한다는 얘기다. 이런 양군간 무역분쟁은 결국은 힘으로 해결된다. 미국이 무역보복 조치를 들먹이면 일본은 잠시 맞서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힘으로 나오는 미국에 굴복하곤 한다. 실제로 미국이 무역보복을 하면 일본은 광대한 미국 시장으로 수출할 길이 막혀 미국보다 심한 타격을 입게 돼 있기 때문이다. 미, 일 무역분쟁은 지난 94년까지 치솟기만 하던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 추세가 급하게 꺾이면
서 사그러들었지만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일본이 없다'고?
한국 사람들이 일본이 별 것 아니라고 말한다면 적어도 경제에 관한 한, 억지를 쓰는 셈이다. 일본이 해마다 무역흑자를 누리는 데 반해 우리 나라는 만년 무역적자를 벗어나지 못했고 막대한 대일 무역적자를 쌓아왔다. 대일적자는 우리 나라 전체 무역전체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지 오래고, 우리 나라 산업의 극심한 대일 의존도는 개선되지 않아, 세계를 상대로 수출해 버는 돈을 일본에 고스란히 갖다바치고 있다. 1996년에 우리 나라가 일본에 상품을 수출해 벌어들인 돈이 약 157억 달러, 일본 제품을 수입하는 데 쓴 돈은 수출액의 두 배인 약 314억달러다. 일본을 상대로 한 무역수지만 이 해 사상 최대 규모인 약 157억달러의 적자를 봤다. 97년 상반기에도 우리 나라는 일본과의 교역에서 73억달러어치를 팔고 144억달러어치를 사들여 70억 4천 7백만달러의 적자를 봤다. 이 적자는 같은 기간 전체 무역적자 91억 4천 2백만어치의 77.0%를 차지하는 금액이었다. 1965년 한일수교가 개시된 이래 우리
나라는 대일 흑자를 본 적이 없다.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은 해마다 눈덩이처럼 크게 불어났다. 97년 6월말까지 적자 누적액은 총 1천3백26억달러. 96년 우리 나라 총 수출액 1천 297억달러보다 많은 액수다. 대일 무역역조의 원인은 양국간 산업구조의 불균형에 있다. 일본은 주요 수출상품이 승용차, 반도체, 컴퓨터, 산업용 로봇, 전자복사기 등 높은 수준의 기술을 쓰는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에 모여 있지만 우리 나라는 반도체를 제하고는 기술과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선박, 직물, 유류, 철강 등의 상품에 수출품이 모여 있다. 지난 60년대초 일본 경제를 본떠 경제개발을 시작한 우리 나라는 공업화 과정에서 제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중간재와 자본재, 기술을 주로 일본에 의존해 왔고 이 의존도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1996년 우리 나라의 전체 수입(1천 503억 3,900만달러) 가운데 대일 수입 비중은 21 수준이지만, 농산물을 등을 빼고 중간투입재나 최종완성재 가운데 일제의 비중은 45%-55%나 된다. 철강 금속 전자전기 산업기계류 등 생산에 필수적인 자본재 등 주요 품목은 95% 이상이 일제수입품이다. 일본에 수출되는 우리 상품도 70% 정도는 철강 반도체 전기전자 제품 기계류 등 중화학공업 제품이기는 하다. 그러나 일본에서 우리가 수입하는 제품은 거의 전부가 우리 산업 생산에 꼭 필요한 핵심부품이나 시설재등이다. 이본에서 중화학공업 제품을 수입해오지 않으면 우리 나라 수출산업은 당장에 큰 타격을 입게 돼 있다. 우리 나라의 수출이 늘면 일본에서의 수입이 그만큼 거의 자동으로 늘어난다. 수출은 우리 나라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인데 이 견인차가 일본이라는 굵은 끈에 묶여 있다. 일본에 이어진 끈을 풀거나 늦추려면, 수출하는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핵심부품이나 시설재를 우리 손으로 마련해야 한다. 곧 기술력을 증강해야 한다. 이 일을 맡아 할 이들은 규모는 작아도 전문화된 중견기업들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대규모 기업집단 곧 재벌을 키우는 데 치우쳐 중견기업들을 키워내지 못했고 과제는 그대도 남았다.
IMF 손에 활짝 열린 한국 시장
시장개방이란 말 그대로 외국의 기업, 상품, 서비스, 자본에 시장을 열어 주는 것이다. 시장을 개방하는 나라에서는 외국상품이 자유로이 판매되고 외국의 금융기업 또는 일반 기업들이 자유로이 영업활동을 벌일 수 있다. 또 외국인 투자가들이 주식이나 채권을 포함한 금융상품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다. 개방된 시장에서는 외국의 상품과 서비스가 내국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와 경쟁을 벌이면서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넓혀준다. 국내기업은 외국업체와 경쟁하면서 첨단 기술과 경영기법을 배워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일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한다. 또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자본을 빌어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장개방은 국내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값비싼 사치성 소비재 수입이 늘면 과소비를 부를 수도 있다. 값싼 수입품이 많이 들어오면 저가품을 생산해 파는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입게 된다. 경쟁력이 유난히 취약한 부문은 국내 산업기반 자체가 위태롭게 될 수 도 있다. 자본시장에 드나드는 외국자본의 흐름이 투기를 목적으로 거액을 동원해 빠르게 드나들면 환율이 급변해 외환위기를 부르고 국내경제 질서를 흔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시장이 한국인에게 개방된 상태에서는, 정부통제를 시장원리가 압도해 정부가 시장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시장개방의 부작용에서 경제를 보호하려는 나라는 으레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해 수입품 값이 올라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거나 관세 외의 수단 곧 비관세장벽을 동원해 수입을 억제한다. 원칙적으로 개방을 하더라도 그런 장벽을 서서히 낮춰 가는 방식으로 시장개방을 완만하게 추진하려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역시 그런 방식으로 시장개방의 속도와 폭을 조정해왔다. 1997년말 IMF의 관리체제 아래 놓이기 이전에 이미 우리 나라의 상품수입 자유화는 사실상 완결됐고 수입 상품에 물리는 관세율도 크게 낮아졌었다. 서비스시장도 95%이상 개방됐었다. 남은 문제는 주로 금융, 자본 시장의 개방이었다. 우리 나라 정부와 금융기관은 특히 금융, 자본시장의 개방일정을 완만하게 단계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시장을 일시에 다 열면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외국자본이 자유롭게 시장을 드나들면 막강한 자본력으로 금융시장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 나라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게 된 국제통화기금(IMF)이 나서면서 시장개방 일정은 크게 앞당겨졌다. 개방의 폭도 획기적으로 넓어졌다. 금융, 자본시장은 1998년부터 사실상 완전 개방됐다. 외국자본이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을 자유로이 인수, 합병할 수 있게 됐고 외국의 은행 증권회사가 투자신탁회사가 자유로이 국내에 자회사를 세워 영업할 수 있게 됐다. 97년 12월까지는 외국인이 주식을 사들일 수 있는 한도가 종목당 26%, 98년부터는 55%로 제한되어 있었으나 6월부터는 제한이 완전히 없어짐으로써 외국인이 주식을 사 모아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할 길을 활짝 열었다. 채권시장도 활짝 열렸다. 이로써 우리 나라 시장은 상품이든 자본이든 세계를 상대로 활짝 열리게 됐다. 국가라는 틀이 세계를 무대로 한 시장경제 속에서 기업의 보호막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기업과 금융기업은 자본력과 기술, 경영기법이 뛰어난 선진국의 기업, 금융기업과 경쟁을 벌여 생존을 다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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